“내 손으로 일으킨 것은 내 손으로 무너뜨립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는 무뚝뚝한 말투였다. 초등학생 1학년생이 국어책을 또박또박 읽는 모양새다. 그리고 갑자기 말을 끊었다. 때 아닌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뜻밖에도 찻잔이었다. 누가 건들지도 않았는데 찻잔 스스로 흔들렸다. 그러나 흔들린 것은 찻잔만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상체가 급격히 요동쳤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가만히 그 손을 바라만 보았다.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미련을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강한 의지가 상대방에 확실히 전달됐다.
그리고 일주일 후 상대방은 물러났다. 상대방의 인수 기도도 자연스레 무산됐다. 지난 2007년의 일이다.
그녀는 아시안푸드의 조미옥 대표다. 가녀린 몸매에 아직 소녀티가 군데군데 남아 있는 얼굴에서 갖은 풍상을 겪은 여장부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 남성들 못지않은 대장부이다.
여자에게 웬 대장부 타령인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중국 전국시대의 맹자에게 급히 대장부에 대해 물어보았다.
‘부귀영화도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 마음을 흔들지 못하며, 위압과 폭력도 그 뜻을 꺾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대장부는 한마디로 그릇이 큰 사람이다. 사람의 그릇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기(根機)의 폭이다. 마음의 넓이로 풀이할 수가 있다. 마음이 넓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마음씀씀이가 좋아야 한다.
사람은 각자의 그릇을 갖고 있다. 간장종지가 있고, 냉면그릇이 있다. 밥그릇이 있고, 양푼 그릇이 있다. 쉽게 깨지는 그릇이 있고, 은은한 색깔이 좀처럼 변치 않는 그릇이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커지는 그릇이 있는가하면, 오히려 축소되는 그릇이 있다. 최근 들어 작아지는 그릇이 쉽게 눈에 띈다. 한 때 성공했다가 축소 또는 몰락하는 과정의 사업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의 그릇이 왜 중요한가. 그릇에 따라 그 사람의 명암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간장종지가 세상을 호령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부와 권력을 얻었다는 소식 또한 감감하다. 필자가 만난 성공한 CEO들의 그릇은 크기와 재질 색깔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일반 세일즈맨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릇이 크다.
이나모리 가쯔오, 리자청, 손정의, 빌게이츠, 메리케이 등이 거둔 성공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릇의 차이다. 커다란 성공에는 항상 그릇의 크기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릇이 클수록 성공의 크기도 커진다. 그리고 성공의 여운도 오래간다. 그들의 성공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릇이 성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왜 성공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가. 홍콩의 창장그룹을 이끄는 리자창에게 그 궁금증을 찾아보자. 먼저 일러둘 것이 있다.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0센트는 리자청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속설이다.
460여개 다국적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는 창장그룹의 근간은 창장실업이다. 창장실업의 한공장이 최근에서야 문을 닫았다. 사양길에 확실히 접어든 플라스틱 조화 공장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 사연을 찾자면 리자청의 성공법칙을 알 수 있다.
플라스틱 공장은 진작 정리했어야 하는 공장이다. 수익성도 별로고, 발 빠른 변신을 시도하는 회사의 진행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공장의 마감을 최종까지 늦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창장실업의 모태가 된 공장이라는 점이다. 자신을 있게 한 근본을 잊고 싶지 않았다. 둘째는 공장에 근무하는 공원들이다. 이제는 노쇠한 이들의 생계가 걱정이 돼 문을 닫지 못했던 것이다. 공장 문을 닫고 난 후 리자청은 몇 안 되는 늙은 직원들을 빌딩관리 등의 일을 하도록 배려했다.
‘매각하고, 잘라라’는 식의 공격적인 경영이 대세가 된 요즘의 세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휴먼이다. 휴먼경영은 그릇이 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의 경영기법이다.
창장실업의 ‘창장’부터가 리자청이 품고 있는 포부를 대변하고 있다. 창장은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양자강이다.
“창장은 작은 물줄기도 받아들여 만 리를 도도하게 흐른다. 강의 시작은 보잘 것 없지만 동으로 흐르면서 무수한 지류와 합류하여 거대한 기세를 형성한다.”
양자강의 광대함은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자들이 말하기를 리자청은 어떤 일도 포용할 만한 큰 도량을 갖추었고,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창장처럼 그는 어떤 일도 포용할만한 도량을 갖추었다. 그의 포용은 사욕을 버리고 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업가의 그릇이다. 좋은 기업을 넘어서 위대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가는 반드시 올바른 철학과 신념을 갖추어야 한다. 도덕성이 겸비된 철학 말이다. 그와 대화를 해보자.
“나는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릇이 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느껴지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마음이 넓다보니 근심걱정이 있다 해도 차지하는 부문이 작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또한 걱정이 없다. 어제와 오늘에 대한 걱정이 없고, 있다면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건강한 두려움이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넘치는 자신감도 이들의 특징이다. ‘할 일은 많고 세상은 넓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이에 따른 집중과 지속력도 남들과는 차별화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릇의 크기를 알 수 있을까. 전자저울로 잴 성질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것들을 재려면 역설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 경우는 그릇이 작은 사례를 따져보는 것이다. 필자는 사람의 그릇을 4가지 기준으로 갖고 판별한다.
첫째 손해를 보았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한사코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릇이 작다.
둘째 억울함을 겪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어떠한 억울함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하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 게 좋다. 거꾸로 때론 억울함도 교훈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대범한 태도는 격이 높은 것이다.
셋째 항상 이기려는 자이다. 지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은 한마디로 승부욕이 강한 자이다. 승부욕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탈이다. 이런 자들과는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성이 있는 이들의 그릇 크기는 사발그릇을 넘지 못한다.
넷째 말로써 성취하려는 자이다. 서두만 있고 결론이 없다. 기대할 것 하나도 없는 자이다. 그릇으로 보면 간장종지이고,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그릇은 정해진 것인가, 타고난 것인가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50%는 타고 나지만 나머지 50%는 키울 수 있다. 그 나머지 50%가 선천적인 50%를 훨씬 능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릇을 키우는 방법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역경, 보시, 지혜 등 세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것이 역경이다. 역경은 그 사람의 그릇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그릇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역경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반응한다. 피할 것인지, 아니면 투쟁할 것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머리로 사는 삶과 가슴으로 사는 삶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머리로 사는 삶은 두려움에 떨면서 이성이란 장막을 친다. 합리 논리 관념 등으로 무장해 외부와의 문을 막아버린다. 그리고 그 뒤로 숨어 버린다. 피하는 삶, 머리로 사는 삶은 얘기할 가치가 없다. 그릇자체가 너무 작다.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투쟁하는 삶, 즉 가슴으로 사는 삶이다.
가슴으로 산다는 것은 불확실하게 산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벗어나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이다. 비록 위험투성이로 가득 찬 길이지만 선뜩 한발을 내딛는다. 역경을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직접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그가 위험에서 얻는 것은 순수한 경험이다. 피와 눈물과 땀으로 얻은 이 경험에서 그릇은 단련되고 커지는 것이다. 역경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그릇이 깨질 것인가, 단단하고 아름다운 그릇을 탄생할 것인가는 오로지 그 사람의 근기에 달려있다.
세상은 모든 것과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그릇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다. 흔히 이를 보시라고 하는데, 남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치고 그릇이 작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베풀수록 그릇은 커지게 마련이다.
깨닫는 것도 그릇을 키우는 방법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사는 것에 통달한 사람들의 배포는 남다르다. 지혜를 터득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다를 것이다. 책을 통해서, 명상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아니면 일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서 밝은 지혜를 엿보곤 한다.
역경 보시 지혜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통달한다면 자신의 그릇을 키울 수 있다. 이중 두 가지 방법을 동원하면 더 좋을 것이다. 세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면 말할 것도 없다. 보기드믄 그릇이 탄생할 것이다.
그릇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최근 사업을 하겠다는 주변사람들이 많다. 특히 후배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들에게 예전에는 격려를 해줬다. 그릇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의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하지 말라며 만류한다. 남을 먹여살만한 그릇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우 자신의 밥그릇을 처리할만한 배포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한 일입니다.”
최근 주점프랜차이즈 ‘마찌마찌’의 전문경영인으로 취임한 김명기 대표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럴 경우 시나리오는 뻔하다. 1,2년 후 사업을 접든지, 다시 남의 밑으로 들어간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사업을 쉽게 보면 안 된다. 사업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사업할 그릇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사업을 하고 싶다면 자신의 그릇을 먼저 키울 일이다.
이들 후배에게 서두에서 언급한 조미옥 대표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필자가 알기론 그녀는 두어 번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근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얘기한 그녀를 배제한 합병건도 그녀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물리쳤다. 이로 인한 자금부족의 불리함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후 그녀의 사업은 탄력이 붙었다. 그녀가 이끄는 아시안푸드는 중식관련 4개 브랜드에 가맹점이 100개를 웃돈다. 미국진출도 확정됐다. 미국과는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으로 기세몰이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세몰이가 국내외에서 거칠게 몰아칠 것인지, 아니면 한때의 바람으로 머물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일이다. 이는 역경 속에서 단련된 그녀의 그릇이 어디까지인가에 오로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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