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아모가 몽골에 간 까닭은
테렌치 자연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테렌치는 몽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숲이 무성한 곳으로 몽골인들의 휴식처이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길은 황량했다. 나무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무가 없는 산을 상상하기란 어렵지는 않으나 막상 눈앞에서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넓게 펼쳐진 평원 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영화 속의 연출된 장면 같았다.
왈칵 가슴이 북받쳐온다. 그리워할 그 무엇도 없는데 가슴 깊이 스며드는 서글픈 감상은 웬일일까. 이곳에 그 어떤 인연도 없는데 감정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원의 황량함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젤라또 아이스크림 카페인 띠아모가 몽골에 문을 열었다. 띠아모 몽골1호점의 점주는 아륭 바트. 아직 마흔이 안 된 여인네다. 북한에서 공부한 그녀는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한국을 알고, 한국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한 겨울철에는 영하 40,50도 혹한이 몰아친다는 몽골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낸다는 그녀의 배짱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개업식과 시장조사차 떠나는 띠아모 일행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몽골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기억해낸 것은 다소 엉뚱한 것이었다. 몽골이 자랑하는 칭기스칸의 행적도, 몽골 고유의 주거지인 게르도,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몬다는 말몰이도, 평원을 뒤덮는 양떼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견딘 비석에 새겨진 글귀였다.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천년도 더 먼 옛날 유목민의 조상이 허허벌판에 세워놓은 비문에 새겨진 경고성 글귀가 비행 내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리고는 비행기는 다른 것을 생각도 주지 않고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다.
띠아모의 몽골진출과 함께 얘기할 것은 아륭 바트의 성공비결이다. 그녀의 장점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액세서리, 잡지, 생맥주 등에서 참담한 실패를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실패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곧바로 성공을 위해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성공사업은 베이커리다. 그녀는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몽 베이커리’ 매장을 8개나 갖고 있다. 몽골 최대의 베이커리 사업가이다. 기억할 것은 사업시작 전에는 단돈 100원이 없어 걸어 다녔던 그녀였다.
2008년9월 그녀가 또다시 도전하는 것이 젤라또 아이스크림 카페다. 젤라또 아이스크림 카페가 몽골에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몽골에서 사업검증이 안 된 아이템을 과감히 수용하는 태도는 투사답다. 용맹스럽다. 1호점에 투자한 돈은 우리 돈으로 3억 원을 넘는다. 몽골에서는 다소 부담스런 투자였을 것이다. 그녀는 몽골에 젤라또 아이스크림 카페인 띠아모 2호,3호점을 연이어 낼 계획이다.
몽골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다. 빈부격차는 후진국, 개발도상국의 특성이다. 남한보다 17배나 되는 넓은 땅에 석탄 구리 등 다양한 자원보고를 갖춘 나라지만 발전이 늦는 이유는 무엇일까. 몽골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 의문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풀렸다.
“이곳 사람들은 느긋해요 서둘지 않죠.
아륭 바트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아냈다. 칭기스칸의 얼굴이 갑자기 클로즈업됐다.
생소한 것은 울란바토르에서 바라보이는 산이었다. 산속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돌로 얼굴의 윤곽을 쌓아올려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산속의 얼굴은 역시 칭기스칸이었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이런 그림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내 곳곳에서도 칭기스칸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상표명에도 광고판에도 간판에도 칭기스칸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칭기스칸은 여전히 몽골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몽골은 아무리 생각해도 칭기스칸의 나라였다. 그게 문제였다.
왜 칭기스칸이 문제인가. 중세기의 칭기스칸이 현대의 몽골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 죽은 자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함에도 불구, 몽골인들은 그를 다시 살아나게 했다. 그러나 칭기스칸이 살아남으로써 오늘날 몽골은 칭기스칸이 활약하던 13세기로 돌아갔다. 21세기의 몽골은 보이지 않는다.
알다시피 칭기스칸은 열린 마음을 갖춘 지도자였다. 자신의 핏줄이 아닌 장남(조치)을 받아들인 사건을 보더라도 그의 개방성은 차원이 다르다. 몽골제국이 유지되는 동안 몽골족에 편입된 자들은 신분 귀천에 구애받지 않았다. 노예 고아 가난한 자들을 몽골족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의 지도하에 외국인은 아무런 배척받지 않았다. 종교도 열려 있었다.
그는 열린 마음을 가진 지도자였지만, 몽골인들은 칭기스칸의 테두리 안에서 갇혀 살고 있다. 열린사회와 닫힌사회를 칭기스칸에서 동시에 읽는다. 13세기의 칭기스칸에서 열린 사회를 보았다면, 21세기 몽골에서는 닫힌 사회를 보았다. 칭기스칸에 의해 닫힌 사회다. 칭기스칸에 만족한다는 얘기다. 칭기스칸을 추앙하며 살면서도, 칭기스칸처럼 격렬하게 빠르게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륭 바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이곳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약해요. 한국처럼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지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떠올린 것은 톤유쿠크 비문이다. 몽골 행 비행기에서 애써 생각해낸 것도 그 비문이다. 울란바토르 근교에 가면 돌궐 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 비문에 새겨진 글귀가 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유목민의 조상은 후손들에게 항상 경계할 것을 명령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은 지엄한 명령이자, 지상 최대의 실천 덕목이었다. 그 자리에서 멈추지 말고 전진하라고 요구했다.
멈춤이 없는 경지는 높은 경지다. 멈추는 순간 운명은 가라앉기 시작한다. 만족하는 그 순간부터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침략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도 학문도 사랑도 우정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기업으로 말하자면 좋은 기업은 많지만 위대한 기업이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몽골은 조상의 경고를 저버리고 있다. 조상의 유훈은 역사 박물관에 전시하고,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현실에 머물다보면 목표의식이 부족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몽골인들은 목표의식을 잃었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는 행동이 따르는 실천을 말한다. 단지 생각에만 그치는 목표는 목표가 아니다. 목표를 잃은 사람은 활기가 부족하다. 성취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아륭 바트는 일상에서 만난 몽골인과는 달랐다. 목표의식이 뚜렷했다.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사업 첫무대는 몽골이 아닌 한국이었다. 유창한 한국어를 바탕으로 보따리 여행사를 차렸다. 상인들을 이끌고 울란바토르에서 베이징으로, 베이징에서 칭다오로 이동했다. 기차가 여행수단이었다. 칭다오에서는 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왔다. 차편 연결이 적절치 못하면 1주일이나 걸리는 여정이었다. 기나긴 여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직항로가 없을 때의 일이다.
긴 여정 속에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지루한 여행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피곤을 몰랐다. 오히려 흥분 상태에서 한국과 몽골을 오갔다. 새로운 세상에 접한다는 데서 오는 긴장이 그녀의 에너지원이 되었다. 강렬한 호기심과 실험정신이 그녀로 하여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칭기스칸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본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나라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생각은 어쩌면 모험이었다. 가진 것 없는 나라에서 고급 카페문화를 전파한다는 것도 또한 모험이었다.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띠아모의 생각은 달랐다. 호기심이 많았다. 새로운 세계에 뛰어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입니다. 띠아모의 깃발을 꽂아야지요.”
김성동 대표, 장병헌 이사, 이지훈 주임 등 몽골 개업식에 참석한 띠아모 3인의 이구동성이다. 당당하다. 그러나 어디서 들어본 말 같다.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칸께서 우리의 땅이라고 명하셨다.’
칭기스칸의 시대를 설명하는 말이다. 나라를 경영하든 사업을 하든 뜻은 원대하게 품어야 한다. 피가 끓지 않는 목표는 시시하다.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몽골에 진출한 띠아모, 동토(凍土)의 나라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카페를 선택한 아륭 바트 그리고 칭기스칸에게서 공히 찾을 수 있는 것은 하나이다. 열린 마음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기세가 등등하다. 이런 특성은 유목민의 기질이다.
21세기는 유목민의 시대다. 기회를 포착하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21세기 유목민이다. 조직을 가볍게 한 유목민은 열린 자세로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유목민에 대한 해석은 기업경영의 좌초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업경영이 흔들리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들의 세계에 닫혀있는 경우다. 과거에 만족해하고 무사안일에 빠지는 조직은 오래갈 수 없다. 또 하나는 경계를 저버리는 경우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외부환경 관찰을 게을리 하는 조직은 반드시 퇴보한다. 둘 다 유목민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다. 21세기 유목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기업경영의 지속, 번창과도 밀접하다.
돌아오는 길. 일행은 지쳐 있었다. 타이트한 여정 탓이다. 그러나 우리를 공항까지 안내한 아륭 바트는 씩씩하다. 기운이 넘치는 모양새다. 물어보는 것도 많다. 호기심이 만만치 않다. 몽골이 낯설지 않다는 말에 그녀가 불쑥 물었다.
“테렌치로 다시 돌아갈까요?”
테렌치의 햇살이 갑자기 떠올랐다. 너무나 강렬하고, 수정처럼 맑은 햇살이었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맞보았던 햇살을 만난 것이다. 인연도 없는 몽골에서 까닭 없이 그리움에 젖은 것은 햇살 때문이었다. 그놈의 햇살이 문제였다.
평원의 황량함이 아니었다.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평원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칭기스칸이 그러했듯이 황량한 평원은 이동의 통로였다. 그 옛날 유목민이 그러하듯이, 띠아모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정복할 땅이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들, 21세기 유목민을 자처하는 자들이 거쳐 가야 할 현실이었다. |